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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목회 - 수직적 교회vertical Church
운영자 2019-04-02 추천 0 댓글 0 조회 332

사도행전 교회플랜팅 수직적 교회vertical Church

 

1)하나님께 영광 되는 교회(교회 관에 대한 바른 의식)

교회는 인간의 깊은 갈망을 채우는 곳이 되어야한다. 인간의 근본을 해결해 주는 곳이 교회이다.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역할을 다해야 한다. 교회는 사람들이 다른 어느 곳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을 발견하게 해줘야 한다.

인간중심 교회는 사랑, 용서, 자비, 연민을 원하지만 하나님 중심교회는 영원, 초월, 임재, 거룩, 영광을 위해 존재한다. 교회의 목적이 혼란스럽다는 것은 모든 사역도 혼란스럽게 되고 사람들도 혼란스러운 삶을 살게 한다는 것이다. 교회가 무엇을 중심으로 하는가에 따라 사람들의 중심도 바뀌게 된다.

교회에 와서 다른 것들이 입력되지 않도록 교회의 중심 되는 메시지를 가르쳐야 한다. 우리 교회는 수직적 교회인가? 수평적 교회인가? 수직적 교회라면 이미 겪은 것과 앞으로 겪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한마디로 수직적 교회가 된다는 것은 대가지불에 있다.

 

하나님을 통제하는 교회를 세우지 말라. 하나님은 교회가 하나님께 영광돌리도록 택하셨다. 우리 가운데 가득한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서 그분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 요한은 예수에게서 영광을 보았다.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은혜와 진리란 영광이라는 수직적 관계가 근원이다.

 

믿음이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기보다는 자신의 영광을 구한다.

(5: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교회 토양을 바꾸어야 한다. 낡아빠진 신념과 경험 사고를 잘라버려야 산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을 고집하며 예배하고 신앙생활을 한다. 마치 사람들은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행동한다. 자기주장이 너무 많다. 성경적이지도 않고 교회의 부흥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들로 쓸모없는 충돌은 어떤 유익도 0%이다. 영광되지 않는 일을 버려야 하나님이 임하신다.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고난을 보는 우리의 시각도 많이 달라져야 한다. 교회는 고통과 고난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어느 교회든지 탄탄대로를 걸어가는 것이 아니다. 교인들이 한두 명 떠나기도 하지만 집단적으로 떠나는 위기도 있고, 사역자들이 배신을 하는 경우와 정말 굳게 믿었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기도 한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을 따르고 크게 헌신을 하는데도 그의 오라버니 나사로가 병들에 죽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교회를 위하여 열정을 다하고 목회를 위해 충성하는데 고통이나 어려움이 찾아온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낙심 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나 고난이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날 기회라는 것을 깊이 새겨야한다. 고난 중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11: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교회의 어려움, 목회의 고난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줄 기회라는 것이다. 그런 상황 중에서, 그런 여건 속에서, 그런 아픔 가운데, 그런 절망 앞에서 찬양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내 삶속으로 들어오신 것이 비결이다. 고난 중에 인간이 보일 수 없는 행동을 보이든지, 사람들이 갈망하는 초월을 드러내는 것은 수평적인 삶이 아니라 수직적인 관계이다.

목회는 전략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느냐에 달린 것이다. 고난은 어느 교회나 아무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고난은 영광을 보게 하고 나타나게 히는 일이기 때문에 마르다와 마리아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드린 믿음을 가진 자에게 주시는 특권이다. 열심히 기도하지 않고 주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충성하지도 않는 교회와 사람에게 고난을 주어 영광을 드러내지 않으신다. 오히려 고통만 있고 회개를 촉구 할 뿐이다.

 

[16:13-16:14]

(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16: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신다. 성령은 어떤 특별한 사건이나 현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 영광의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는 기도를 하셨다.

[17:22-17:24]

(17: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 이다(17: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예수님이 교회와 우리들을 통해 행하시기 원하는 것은 그분의 영광을 보여주기 원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가 교회와 성도들의 삶에서 이루어지기를 항상 기도해야 한다.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지 않는 교회라면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지구상에서 하나님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겠다고 약속해주신 단 한곳이 교회이다. 영원, 초월, 임재, 영광은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에만 약속된 것이다. 이것은 주님이 세우신 교회에만 하나님의 적극적 참여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지, 어느 교회든지 영광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예배회복의 교회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고 복음에 충만한 예배하는 교회를 하나님은 원하신다.

 

영광의 예배

예배의 적은 자기 우상화이다. 우상숭배란 사람이나 대상을 예배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미 하나님은 그런 우상숭배에 대해 첫 번째 계명으로 금하셨다.

[개역개정](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우상숭배는 죄이다. 만일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다른 것을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 하는 잘못된 신앙이다. 오늘의 예배에서 가장 잘못되고 있는 것은 유일하신 하나님께 예배의 본질인 엎드리고 경의를 표현하며 경배로 영광을 돌려야 하는 예배가 사람들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예배는 직접적이고 의도적이며 수직적으로 하나님께 가장 가치 있고 고귀한 표현으로 영광을 돌리는 행위이다.

출애굽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할수록 재앙이 점점 더 깊어집니다. 다섯 번째 재앙은 짐승에게만 악질이 일어났는데 이제는 사람 몸에까지 독종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하시기를 풀무에서 재 두 웅큼을 가지고 하늘을 향하여 날리라고 하십니다. 풀무는 이스라엘이 벽돌을 구우면서 고통을 당하던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고통을 준 댓가를 치르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귀한 자들입니다.

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14:8-18. 사람들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오면서 그 옛날 제우스 신과 헤르메스 신에게 못 다한 대접을 이제라도 하기 위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향해 엎드려 정성으로 경배하려는 순간입니다. 사람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매력적인 장면입니까?

사람에게는 자기 우상화를 즐기고 싶은 본능들이 있기 마련인데도 바울은 자기 우상화의 본능을 단호히 극복합니다. 하나님의 가장 싫어하시는 죄가 무엇입니까? 우상 숭배입니다. 그럼에도 사람은 하나님 보다 우상을 향해서 달려가고 싶어 하는 죄악 된 근성을 지니고 있으며, 유일신을 믿는 이스라엘도 그들의 시선을 하나님 보다 자주 우상으로 옮겼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역사를 표현할 때 우상 사이에서 방황하는 역사라고까지 말합니다.

바울은 앉은뱅이를 고치는 장면에서 이 사람을 고치는 어떤 절대적인 권능이 자기에게 있는 것처럼 행하지 않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또 자기가 무엇을 그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것처럼 하지도 않고 그저 그 사람 안에 있는 치료받을 수 있는 믿음을 보고 있을 뿐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인간됨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15절은 바울이 그를 사람의 형상을 입은 신으로 착각하고 그에게 제사를 드리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응답한 메시지입니다.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성정이란 단어는 본래 헬라어에서 인간의 죄성과 연약성을 말할 때 쓰이는 단어로서 나도 당신들처럼 연약한 인간이며 무능한 죄인이라는 표현입니다. 이 사건과 비슷한 이야기가 행 1026절에도 있습니다.

10:25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26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오늘날에도 더러는 사람이 기적을 행한다고 말하지만 아직 사도행전에 나타난 기적이나 권능만큼 완벽한 것은 찾아보기가 힘이 듭니다. 그들은 이 위대한 기적을 행하면서도 자기들이 하나님 앞에서 연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망각하지 않았으며 베드로, 바울, 바나바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순수한 신앙을 가졌던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로 구원받은 자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아니하였기에 자기 우상화의 위험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온 존재의 예배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이 명령은 우리의 온 존재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예배라는 것을 가르친다. 예배는 갈망하는 것인데 지적 상태를 말하기보다 전인적 상태를 의미한다. 마음을 담아 드리고 영혼의 열정을 갈망하며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이 내 육체에 느낄만큼 강렬하게 나타나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는 것은 나를 불태우는 예배에서 가능하다.

[개역개정](10: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기쁨과 눈물과 순수함의 예배는 모두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다(6:3). 예배드릴 때마다 어김없이 임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은 온 존재로 예배할 때이다.

깊은 고백이 살아있는 예배

예배는 사람의 입맛에 맞추기 때문에 변질되고 너무 사람 중심으로 흘러가기에 죽어가는 것이다. 예배는 보다 하나님을 향하여 깊이 있게 알아가고 그분의 영광과 존귀함을 더욱 송축하는 일이다. 그래서 예배는 하나님과의 친밀성 가운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광되게 고백하는 것이다.

[대상 29:10-대상 29:13]

[개역개정](대상 29:10)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이르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을 받으시옵소서[개역개정](대상 29:11)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개역개정](대상 29: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개역개정](대상 29:13)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영적예배

사람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는 영적 예배를 드려야 한다. 어두운 율법주의에 갇혀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고정시켜 놓은 경직된 예배의 틀을 벗어나는 것과 비판과 독선적 예배 개념을 깨뜨리는 것은 성령이 이끌어 주는 예배만이 할 수 있다. 통회, 감사, 기쁨은 성령을 만난 예배 자에게서 볼 수 있는 은혜이다.

예배는 시간표에 따라 기계적이거나 몇몇 사람에 의해 형식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의전적 예배도 하나님을 초대한 영광되는 예배를 위해서 열정을 보여야 한다. 찬양이든 기도이든 설교를 들을 때이든 모든 표현과 참여는 성령에게 사로잡혀야 한다. 아멘을 하는 것이나 큰 목소리로 찬양을 하고 눈물이 흐르는 기도를 하는 예배 행위는 인위적으로 될 수 없는 일이다. 성령의 임재가 예배 전체를 바꾼다.

[4:23-4:24]

[개역개정](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개역개정](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진리(眞理)의 예배는 예배의 본질인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앎을 말하는 것이고, ()의 예배는 하나님이 영이시기에 하나님과의 교제 그리고 만남이 영으로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배를 진리와 영으로 말씀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말하는 장소(21장소대상, 태도(22열정진리), 형식(23상태진정)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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