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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속을 살며 하늘을 우러러 본다. 운영자 2018-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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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에 살며 하늘을 우러러 본다.

이상욱 목사

 

  탈무드를 만든 랍비는 오늘날 말하는 교육 전문가도 선교사도 아니었다. 그들의 일은 처세훈(處世訓)인 《아보트》에 명백하게 언급되어 있다. ‘신중하게 판단하고, 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토라의 말씀대로(아보트 1장 1절).’

  토라는 유대 공동체 생활의 지침서였고, 랍비는 ‘토라의 말씀대로’ 환경의 변화나 생활의 중압감에 흔들리지 않도록 토라를 지켜야만 했다. 그들에게 있어 율법은 생활과 인간성을 향상시키는 윤리적, 정신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법적 수단이었다.

  대부분의 랍비들은 수공업자, 대장장이, 도예업자, 농부, 상인, 재봉사 등으로 보통사람들과 똑같이 생활의 중압감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학문을 좋아하는 호기심을 바탕으로, 오늘날 우리가 세속의 일로 여기는 것에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다. 문제를 처리하는 사람으로서 그들은 세속적 일에 대처했다.

  그들이 세속의 과학적인 일이나 연구에도 손을 댄 것은 토라 해석의 성과를 높여 응용하고 싶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온갖 지식은 신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계시이고, 신이 창조한 우주를 아름다움과 경이로 충만케 한 증거’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코셔(율법에서 인정하는 식품규정)에서 먹어도 되는 짐승인가 아닌가를 정한 율법 가운데 많은 부분은 해부학과 관련이 있다. 또한 천문학과도 관계가 있었다.

  탈무드의 전편에 걸쳐 식물학과 동물학에 대한 지식을 전제로 하는 율법 탈무드의 전편에 걸쳐 식물학과 동물학에 대한 지식을 전제로 하는 율법이 기록되어 있다. 탈무드의 많은 학자들은 여러 나라의 언어를 구사하고 그들 민족의 역사에도 정통해 있었다. 그들은 ‘머리 위에 우러러보는 하늘과 발밑의 대지’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랍비는 공동체가 좋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눈에 보이는 형태로 ‘토라의 길’을 통해 가르침을 주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심어 주려고 애썼는데, 그 모습의 특징은 지적, 정신적, 윤리적인 것이었다.

  물론 자신의 힘을 자랑스럽게 과시하려 한 랍비의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화를 잘 내거나 날카로운 비판만 하는 랍비도 있었다. 재력이 있으면서도 돈쓰기를 아까워하는 랍비도 있었다. 이교도가 된 랍비, 무식한 사람과 다를 바 없는 랍비도 있었다. 그러나 탈무드의 좋은 점은 명예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이런 교사들의 좋지 않은 기록을 배제하지 않고, 정직하게 묘사하고 있는 점이다. 지도층을 구성하고 있던 랍비는 교사로서 전해주고자 하는 가치관을 스스로 본보기가 되어 보여주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랍비’라고 불리셨다. 유대인은 전통 속에서 지혜와 지식을 소중히 하였기 때문에 이 ‘랍비’라는 호칭은 지금까지도 영예로운 이름으로 계속 남아 있다. 그래서 랍비는 아주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이름이다.

 오늘 우리의 시대에는 ‘가르침’을 경시하는 풍조가 늘어간다. 아이들은 교사를 존경하지 않는다. 덕분에 학교에서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비명이 들린다. 수업 시간에 맘대로 구는 아이들도, 교사가 꾸지람이라도 할라치면 핸드폰을 들이대며 동영상 촬영을 하고, 심지어 학교로 경찰을 부른다고 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것은 ‘가르침’의 근본을 잃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단지 머리로 아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아는 과정은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지식이 머리를 채운다면, 감동은 가슴을 채운다. 그래서 아는 것이 삶을 지배하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가르치는 과정에 감동이 없다. 아이들은 성적을 위해 배우고, 자기를 변화시키기 위해 배우지 못한다. 그런 과정에서 단지 결과만을 중시하는 우리의 사회풍토가 아이들에게 가르침의 감동을 말려버린 것이다. 그래서 머리는 가득 차도, 가슴이 텅 비어버린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을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삶과 믿음을 인도할 ‘랍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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