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 홈 >
  • 담임목사 코너 >
  • 목양칼럼
목양칼럼
가르침과 배움의 대화 운영자 2017-12-02
  • 추천 0
  • 댓글 0
  • 조회 166

http://imokmin.net/bbs/bbsView/49/5349856

가르침과 배움의 대화

랍비들은 스스로를 교사로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구전율법을 성문화한다면 단순한 법률 문처럼 짤막하게 정리할 수밖에 없고,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것과 실천사례의 개요만 쓰게 되고, 토론과 결론에 이르기까지 휘해진 조치와 결론에 이른 과정. 대립되는 견해 등은 생략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렇게 법률 문을 무미건조하게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 성문화된 법률은 아무래도 단정적인 표현이 되기 마련이어서, 활발한 토론을 벌이고자 하는 의욕을 잃어버리게 할 수도 있다. 그들은 성문화된 것은 살아 있는 언어에 비하면 죽은 것으로 생각했다.

교사로서 랍비들은 학생과 살아 있는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텍스트는 때때로 교사와 학생 사이를 가로막는 종이커튼처럼 의사소통에 방해가 되는 일이 있다. 설명을 하거나 상세한 내용을 가르치고, 자극을 유발시키는 과정 대신에 텍스트에만 의존하게 된다. 또 기억에 의존하는 것이 지적 활동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탈무드가 완성된 지 수세기 뒤에 한 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르치는 교사 앞에 학생이 앉아 있을 때 학생 마음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 학생이 무엇을 이해하고 무엇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사는 학생이 문제를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 때까지 설명해 주어야 한다. 율법이 성문화되면 이러한 일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문자로 쓰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구두로 말한 것을 글로 쓰게 되면, 특히 교육 분야에서는 간결하게 줄일 수밖에 없고, 의사 전달 작용의 힘과 효과를 약화시키게 된다. 또 랍비들은 기도에 대해 기도는 서류를 읽는 것처럼 외워서는 안 된다고 말했고, 또 어떤 현자는 기도를 일상적인 행사처럼 해치워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매일 새로운 기도를 올릴 것을 권한 현자도 있다. 이러한 것은 교육에도 적용되었다.

유대인들은 성문화된 텍스트에 의존하는 것의 위험성을 간파하고, 교사와 학생의 가장 좋은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은 구두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교사와 학생의 살아 있는 대화의 드라마가 대부분 구두로 계승되어온 전통 속에서 지켜지고 있었다.

가르치는 일을 가르치는 일은 일반대학에서 하는 가르침처럼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일과 다르다. 가르침의 의미가 정보의 전달을 포함하기는 하지만 정보 전달이 곧 가르침의 모든 것은 아니다. ‘가르침지식을 나르는 단순한 수레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더욱 근본적인 것을 동반하는 용어다. 소크라테스가 일생을 통하여 가르침을 화두로 삼은 것은 가르침속에 무엇인가 다른 것이 숨어 있었음을 인식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당시의 소피스트들은 그가 보고 있던 것을 보지 못하였던 것 같다. 그들은 가르침을 잘못 사용하였음에 틀림없다. 결국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들과 대화를 벌인 것은 가르침의 의미에 대한 견해의 차이 때문이었다. 이 차이가 델파이 신전의 아폴로 신이 소크라테스를 아테네의 현자로 선택한 이유다. 소크라테스가 생각한 가르침의 뜻이 옳았다는 뜻이다.

가르침에는 진실로 오랜 역사가 형성한 문화와 고매한 인간정신이 부하되어 있다. 유대인들의 탈무드 교육은 가르침이 가지고 있는 정보전달이라는 표층적 의미보다 인간의 정신문화 계승이라는 심층적 의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여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허리를 굽혀야 진리를 주울 수 있다. 운영자 2018.01.13 0 125
다음글 교육은 칼보다 강하다 운영자 2017.11.25 0 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