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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칼보다 강하다 운영자 2017-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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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칼보다 강하다

 

로마군 포위 아래에 있던 예루살렘에 최후의 순간이 닥쳐오고 있었다. 랍비 요한나 벤 자카이는 어떻게 하면 유대인이 승리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군사적인 승리는 불가능했다. 그리하여 벤 자카이는 예루살렘의 성전이 로마인들에게 파괴되는 일은 어쩔 수 없지만, 유대인은 로마인이 파괴할 수 없는 것을 가져야만 된다. 그것은 바로 교육이다. 교육만이 칼보다 강하다라 고 생각했다.

로마인들은 자손에게 칼을 전해 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칼보다 더 강한 교육을 자손대대로 전해 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유대인이 로마인에게 틀림없이 승리할 것이다.

벤 자카이는 교육은 성서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서는 유대인의 신앙과 지혜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

벤 자카이는 예루살렘을 포위한 로마군의 화톳불을 바라보면서, ‘이제 유대인이 패배를 인정할 시기는 왔다. 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는 로마군은 예루살렘 성벽 밖으로 사람이 나가는 것도, 또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성 안에서도 카나임이라는 과격파(過激派)가 유대인이 성 밖으로 탈출하여 로마군으로 도망가는 것을 삼엄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벤 자카이는 미래의 유대인을 위하여 한 알의 씨앗을 뿌리려면, 로마군 사령관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하인들을 시켜 자기가 중병에 걸렸다는 소문을 퍼뜨리게 하고, 다음 날 자기가 죽었다는 소문을 또 퍼뜨리게 했다. 벤 자카이는 스스로 관 속으로 들어가고, 하인들은 그 관을 메고 성 밖으로 나갔다. 묘지는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 있었고, 과격파들도 시체를 성 밖에 매장하는 것은 허락하고 있었다.

이윽고 예루살렘에서 꽤 떨어진 지점에 이르자 벤 자카이는 관에서 나와 로마군 전선으로 갔고, 병사를 통하여 사령관에게 만나고 싶다는 말을 전하게 했다. 사랑관도 벤 자카이의 명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를 흔쾌히 만나 주었다.

벤 자카이는 예루살렘을 파괴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에는 로마군이 싸움터에 나가면 상대방 도시는 반드시 약탈되고 파괴되고 불살라졌다. 로마군이 예루살렘까지 원정을 온 이상, 만알 베스파시아누스가 예루살렘을 구원해 준다면, 로마로 돌아갔을 때 그의 지위는 틀림없이 위태로울 것이었다. 그러나 벤 자카이는 건물 하나는 구할 수 있으라고 생각했다.

성전이 좋을까? 아니야, 성전이 유대인을 구해 줄 수는 없지. 지켜야 할 것은 건물이 아니라 성서와 그 교사인 랍비야.’ 이리하여 벤 자카이는 황제에게 야브네 도시를 파괴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야브네는 지중해 연안에 있는 인구가 적은 도시로, 산업도 보잘 것 없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대학이 있어, 많은 학자들이 성서를 가르치고 있었다.

로마군이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자 시내는 불바다가 되고, 신전은 파괴되고, 약탈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야브네만은 고스란히 남았다. 이리하여 끝내 유대인은 벤 자카이가 생각한 것처럼 로마를 이겨낼 수 있었다. 예루살렘이 파괴되었을 때, 벤 자카이는 야브네에서 성서를 얽었고, 대학 의 교수와 학생들은 상복을 입었다.

유대인들은 패배를 통하여 설사 외부의 힘에는 질지라도, 자신에게 져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배운다. 외면적으로 패하는 것과 내면적으로 패하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멸망했지만 해안평야 도시 야브네에 있는 유대교 대학은 지킬 수 있었고, 뛰어난 랍비들이 배출됨으로써 미슈나가 성립된다.

지금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미국도 아니고 러시아도 아니다. 중국이나 일본은 더욱 아니다. 유대 두뇌들이라고 말한다. 탁월한 유대 두뇌들이 자기들 나름대로의 네트워크를 이루어 세계를 움직이는 일에 브레인 역할을 하고 있음에서 나온 말이라 여겨진다.

그렇다면 그런 유대 두뇌들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 시작이 1세기에 활약하였던 한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의 성서교육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유대인 사회에서 배울 수 있는 울림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스승이자 갈등의 중재자요 문제 해결의 대안을 제시하는 해결사들인 랍비를 존경하는 교육사상에 있음이다. 우리의 현실은 성경공부보다는 세상지식에 몰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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