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 홈 >
  • 담임목사 코너 >
  • 담임목사
담임목사
3. 모든 것을 버리고 고향을 떠날 수 있는가? 이상욱 2017-07-18
  • 추천 0
  • 댓글 0
  • 조회 190

http://imokmin.net/bbs/bbsView/48/5296785

모든 것을 버리고 고향을 떠날 수 있는가?

12:1

 

지금부터 4,000년 전,성서 시대에 살았던 여성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결혼 전의 어머니가 될 사래가 불임이라는 사실은 아브람이 펼칠 신의 역사에 치명적인 결점이었다. 불임은 히브리어로 아카르(aqar)’. 이 단어의 의미는 가족이라는 나무 그루터기로부터 떨어져 나와 말라 없어진 상태. 아브람은 처음부터 불가능해 보이는 신기루를 찾아 가는 신앙의 여정을 시작한다. 히브리 인의 역사는 바로 이 불임 여성으로부터 시작한다.

 

수메르를 떠나 하란으로

아브람은 기원전 20세기경 오래된 수메르 도시인 우르에서 태어났다. 우르는 동쪽의 유프라테스 강과 서쪽의 티그리스 강 사이에 있는 비옥한 땅인 메소포타미아에 위치한 최고의 국제 도시였다. 당시 동쪽으로부터 아모리인들이 대규모로 들어와 평화로운 수메르 문명을 호전적인 바벨론 문명으로 교체하기에 이르자 아브람은 자신의 고향을 떠난다.

데라는 아틀 아브람과 며느리 사래 그리고 조카 롯을 데리고 우르를 떠나 하란에 도착한다. 하란은 현재 터키와 시리아 국경 지대 에 있는 산리우르파(Sanliurfa)’. 하란은 오래전부터 수메르가 대상 무역소를 설치했던 장소로, 지중해와 티그리스 강 중부를 이어 대상 부역소를 설치했던 장소로 지중해와 티그리스 강 중부를 이어 담고 있다. 하란은 후에 밧단 아람혹은 아람 나하라임으로 불린다. 이곳은 후에 나오는 이삭의 아내 리브가의 고향이기도 하며, 그 들의 아들 야곱이 삼촌 라반을 위해 20년 동안 일했던 유서 깊은 장소다.

어느 날, 아버지 데라가 죽자 아브람과 사래는 홀로 서기를 시도해야 했다. 아브람은 데라가 죽은 뒤 자주 발릭(Balikh) 강둑에 앉아 하염없이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곤 했다. 어느덧 그의 나이 70세가 넘어 그는 죽음을 앞둔 노인이 됐다. 아브람에게는 아직 자식이 없었다. 사래는 불임 여성이었기에 희망조차 없었다. 아브람은 자주 악몽에 시달렸고, 깨어나면 인생의 무력함을 절실히 느꼈다. 아브람은 아버지 데라의 유산으로 화려한 집과 시종, 가축 등 인간이 부러워할 만한 것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공허함을 떨칠 수 없었다. “내가 왜 인생을 이렇게 살아왔을까?”

 

너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려라

아브람은 아침 잠이 없어졌다. 그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기 일쑤였다. 매일 밤 죽음의 신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그는 왜 사는지 고민했다. 수년 전부터 아브람의 시선은 세상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밤하늘보다 더 빛나고 심오한 자신을 탐구하기 시작했고.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이 신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주께서 아브람에게 느닷없이 명령하셨다. “너는 너 자신을 위해서 너의 삶의 터전이 이 땅, 너의 보금자리가 되는 고향, 그리고 네가 삶의 기반이 되는 아버지의 집을 버려라! 그리고 내가 네게 보여줄 새로운 땅으로 가라!”

 

신은 인간에게 두 번째 탈출을 촉구한다. 첫 번째 탈출은 아담과 이브가 모든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고 자신들의 DNA 속에 선성을 습득한 후 대담하게 세상으로 탈출한 것이다. 그들에게 자유의지와 욕망이 없는 파라다이스는 지옥이다. 신은 아브람을 통해 인간에 두 번째 탈출을 명령한다. 이 명령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 반드시 감행해야 하는 의무다. 신은 자신이 처해 있는 장소에 영적인 불만은 느끼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아브람에게 명령한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까워하지 말라! 너 자신을 위해서

유목민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다섯 가지 상징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 상징은 나와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유대인들이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는 가장 작은 상징이자 최소단위는 . 히브리어를 포함한 셈족 어에서 1, 2인칭 대명사 는 공동의 어원 ‘*an’에서 파생됐다. ‘라는 독립적인 주체보다는 나와 너라는 공동체 의식이 훨씬 중요했고, 이러한 공동체 의식이 종교라는 문화 현상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이었다는 점이다.

를 결정하는 두 번째 단위는 직계가족이다. 이 직계가족을 원셈어로는 바이트(bayt- )’라 한다. 자신과 형제자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를 포함한 2촌 관계의 최소 공동체가 바이트이다. 히브리인들은 를 규정하거나 또는 확장하는 나를 바이트라고 표현한다. 바이트는 내가 직계가족과 공유하는 공간이자 이들과 함께 경험하는 시간이다.

나를 규정하는 세 번째와 네 번째 단위는 친족과 부족이다. 친족을 미쉬파하(mishpachah)’라 하는데, 결혼을 통해 확대된 가족을 이르는 용어로 같은 집 혹은 근처에 사는 직계가족을 넘어 조부, 사촌, 삼촌까지 포함한다. 이들은 한 장소에 거주하면서 집성촌(集姓村)을 이룬다. 이들은 유사시 하나의 가족처럼 움직이며 그 우두머리를 족장(族長)’이라 한다. 부족을 히브리어로 마태(mateh)’라 하는데, 한 명의 공동의 조상을 통해 형성된 사람들의 집단이다. 이들 의 구체적인 사항이 잘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부족에 속한 구성원들의 구체적인 사항이 잘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부족에 속한 구성원들은 스스로 이 조상의 후손으로 생각한다.

부족을 넘어선 가장 큰 공동체는 백성이다. 백성은 히브리어 (am)’을 번역한 단어다. 암의 원래 의미는 친족이었으나 부계 중심의 사회를 의미하는 이 말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회학적이면서 종교적인 공동체로 변화한다. 제정인치의 고대 사회에서 종교를 중심으로 이루어 진 이데올로기 공동체를 암이라고 한다.

아모리인을 사회학적 용어를 빌려 표현하자면 히브리인이라 할 수 있다. 히브리인은 히브리어로 이브리(ibri)’. 이 단어는 경계를 넘나들다혹은 ‘(규율을) 어기다라든 뜻의 아바르(abar)’라는 히브리 동사에서 파생했다. 히브리인은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경계를 넘나드는 자율적인 사람들이다.

 

아브람, 새 이름을 얻다.

신은 히브리인인 아브람에게 세 가지를 버리라고 명령한다. 그 첫 번째는 아브람의 땅이다. 땅은 우리의 삶의 기반이다. 땅 없이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신이 우주를 창조할 때 위쪽은 하늘이라 했고 아래쪽은 이라 했다. 그러나 이는 성서 기자의 인간 중심적인 발상에서 비롯한 용어다. 사실 우 주에는 위도 없고 아래도 없다. 우주 공간의 보이지 않는 점과 같은 미세한 존재인 이 지구에서 위아래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용어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거대하고 편평한 땅덩어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지구를 내핵으로 끌어당기는 거부할 수 없는 힘, 바로 중력 때문이다. 물질이 거대할수록 중력은 거세며 우주 안에 행성과 달, 별이 상대방을 끌어당기려는 힘의 균형으로 천체가 운행된다. 땅 위를 떠나려 시도하는 순간, 우리는 어김없이 다시 땅으로 떨어진다. 그런데 신은 우리에게 이 땅을 버리라고 말한다. 여기서 이란 우리도 모르게 우리를 끌어당기는 중력과 같은 자기애와 이기심 이다.

두 번째는 네가 난 곳을 떠나라는 주문이다. 자신이 태어난 곳을 고향이라 하며, 그 고향은 마을이나 도시일 수도 있고, 친족이 모여 사는 집성촌일 수도 있다. 집성촌은 자신의 이기심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단단한 공동체다. 이들의 이기심은 상부상조라는 이름으로 유연하게 적용된다. 고대 베두인 사회를 잘 나타내는 모토는나는 내 형제에 대항하고, 내 형제들과 나는 사촌들에게 대항 하고, 내 사촌들은 낯선 자들에게 대항한다.”이다. 이는 가계와 부족 을 근거로 형성된 핵가족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개인이 보호받는다는 뜻이다.

부족은 세이크(sheikh)라 불리는 족장이 모든 일을 결정한다. 족 장인 아브람이 자신의 고향을 떠나는 순간 그는 생명을 보장받을 수 없다. 고대 근동에서는 어지간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추방 되지 않는다. 추방은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목 사회에서 자신이 사는 지역을 떠나는 일은 곧 죽음이다. 특히 유목사회에서 자신이 사는 지역을 벗어나는 일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살인과 같은 범죄를 저질렀을 때 내리는 형벌이 바로 그 사회로 부터 추방하는 것이다. 신은 아브람의 모든 것이 달려 있는 그 도시, 그가 태어난 곳을 자발적으로 버리라고 명령한다.

신은 세 번째로 아버지의 집을 버리라고 요구한다. 아버지의 집이란 그 사람의 정체성이다. 유목 사회에서는 개인으로 불리기보다 누구의 아들로 불린다. 한사람의 정제성은 자선이 속한 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신은 아브람의 절대적인 순명을 요구하면서 점점 범위를 좁혀간다. 아브람이 버려야 할 대상은 땅에서 고향으로, 다시 고향에서 부모로 옮김으로써 자신의 명령이 비상식적이 면서 동시에 절대적임을 충분히 표현한다.

 

그렇다면 아브람은 어디로 가야만 하는가? 신은 아브람에게 내가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라고 말한다. 여기서 보여줄은 미완료 형이다. 아브람이 가야 할 곳은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는 미지의 장소다. 아브람은 그 땅이 어떤 곳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신이 말하는 그곳은 아무도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구체적이며 객관적인 장소가 아니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갈 때는 자신의 지식으로 가든, 신의 음성을 듣고 가든, 둘 중에 하나이다. 이 장소는 신의 목소리를 듣고 자신만의 여행을 떠나는 자에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유일무이한 장소다.

 

아브람이 자신의 전부를 포기하라는 명령을 따른다면 신은 복을 내리겠다고 약속한다. 복을 뜻하는 히브리어 버러차의 어근은 ‘b-r-k’인데, 이 단어의 가장 근본적은 의미는 무릎이다. 여기서 말하는 복은 무릎을 꿇고 신의 뜻에 순명(順命)하는 것, 또는 순명의 결과로 얻어지는 어떤 것을 뜻한다. 이 약속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아브람은 다시 우르와 그 후에 정착한 하란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아들인다. 이 명령은 아브람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버리고 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 영적인 여행을 떠날 수 있는지에 대한 시험이다. 신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는 삶은 과거로부터의 단절, 삶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의 변화 없이는 도달할 수 없다.

자신의 순명을 따르면 우리는 새로운 존재가 된다. 아브람은 자신의 고향을 떠나는 순간 이름을 잃는다. 신은 아브람에게 신경 쓰지 말라! 내가 너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겠다. 그리고 그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겠다.”라고 말한다. 75세의 아브람은 과감히 떠난다.

하란을 떠난 아브람과 사래의 기나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가나안, 네겝, 이집트를 거쳐 베델 부근에도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갔고, 소돔 근처에서도 살았다가 헤브론의 마므레라는 지역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곳에는 커다란 상수리나무가 있어서 예로부터 이 지역을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라 불렀다.

어느덧 아브람의 나이는 99세가 되었고, 사라는 89세가 됐다. 아브람은 신이 하란에서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은 자손을 주겠다던 약속 위대한 민족을 세우겠다고 했던 약속이 옛 이야기처럼 가물가물하게만 느껴졌다. 이때 신이 아브람에게 나타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17: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17: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17:4-5]

 

또한 신은 사래의 이름 역시 사라로 부르라고 말한 후, 사래로부터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아들의 이름을 이삭으로 지으라고 명령한다.

 

 

 

 ​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4. 주님께 드릴 양이 어디에 있는가? 이상욱 2017.07.18 0 260
다음글 2. 너의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 이상욱 2017.07.18 0 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