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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너의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 이상욱 2017-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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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

4:9

인간은 왜 태어났는가?

아담아 너는 어디에 있느냐의 하나님의 첫 질문은 이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문지방이다. 미지의 세계로 진입하게 해 주는 안내자이다. 우리는 매 순간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간다. 질문은 지금껏 매달러 온 신념이나 편견을 넘어 낮선 시간과 장소에서 마주하는 진실한 자신을 찾기 위해 통과해야만 하는 문이다. 질문에는 마력이 존재한다. 새로운 삶을 찾으려 어둠의 골짜기를 헤맬 때, 사람을 통해서든 자연을 통해서든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것에 귀 기울일 때 운명을 한 순간에 바꾼다.

 

인류의 역사는 살인으로 시작한다.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에서 나온 후 가인과 아벨을 낳았다. 하나님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목동이었던 아벨이 바치는 동물 제사는 좋아한 반면 농부였던 가인의 제시는 거절했다. 이를 시기한 가인은 아벨을 살해한다. 아벨을 살해하고 숨어 있는 가인에게 신은 이렇게 묻는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 이 질문이 바로 성서에 등장하는 신의 두 번째 질문이다.

신의 이 두 번째 질문은 첫 질문과 유사한 듯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르다. 첫 질문은 첫 인간인 아담에게 직접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묻지만, 두 번째 질문은 그 장소에 없는 제3의 인물인 아벨을 찾는다. 이 질문에 대해 가인도 신에게 질문으로 답한다. 나는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이 질문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전지전능한 신은 아벨이 살해당한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왜 가인에게 이러한 질문을 했을까? 이 질문의 기저에는 신의 첫 질문인 네가 어디에 있느냐?"에 대답이 감추어져 있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비밀이 담겨 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는 질문은 바로 인간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인간을 아담이라 했다. 아담은 원래 붉은 흙이라는 의미를 가진 마다마(adamah)에서 유래한 단어다.’ 인간을 흙으로 보았다. 라틴어 호모(homo)’이라는 의미를 가진 후무스(humus)’에서 왔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을 안트로포스(anthropos)’라 했다. 안트로포스에 대한 어원은 ‘(하늘을) 보는 존재라는 의미로 추정할 수 있다. 이 말에는 모든 동물은 땅을 보는 존재이지만, 인간만이 하늘을 보는 존재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서양의 인간개념과는 달리 동양에서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인간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고 다른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그 사람의 본질이 결정된다고 생각해 인간(人間)’으로 명명했다. 이 단어에서 중요한 것은 ()’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에 있다. 서양에서는 에 집중해 인간의 본질을 탐구했다면, 동양에서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집중했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웃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 이웃의 희로애락(喜怒哀樂)과 상관없이 자시만의 이익을 추구해야 할까?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이기적인 유전자/이타적인 유전자

21세기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 비밀이 이기적 유전자에 있다고 말한다. 모든 유전자는 생물체를 희생시켜서라도 자신의 자손을 남기려는 이기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생물은 그것을 위해 이용되는 도구에 지나지 않고 이타적인 행동 또한 이기적인 계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일부 과학자들은 인간의 이기적 유전자는 생명의 기원과 인간 의 본성을 이해하는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의 생존을 보장한 유전자는 불가피하게 이기적일 수밖에 없으며 무슨 수를 써서든지 경쟁자를 물리치고 우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도록 만들어졌다고 주장 한다. 이 이기적인 경쟁력이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 승리의 비밀이다.

파충류의 뇌는 생존을 위한 최소의 전략만을 지닌 채 반응한다. 수로 ‘4-F’라 하는 먹고(feeding) 싸우고(fighting) 도망치고(fleeing) 번식하기(fxxx, reproduction)의 네 가지 반응이다. 파충류는 먹을 것을 차지하기 위해 무자비하게 경쟁하고, 어떤 위협도 불사한 채 무조건 싸워 이기려 한다. 그러나 자신보다 힘이 센 존재가 등장하면 자기 자식이 위험에 처했더라도 바로 도망친다. 그리고 자기번식을 위해서는 본능적으로 어떤 행동도 감행한다. 이 네 가지 행동을 유발하는 내면에는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존재한다.

부모의 이타적인 사랑은 아이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어미의 행동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누군가 자신을 위해 아무런 조건 없이 목숨을 바친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자신의 DNA 속에 이를 각인시키기 시작한다. 모든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무의식적으로 이타적인 노력과 헌신이 생존의 기초라는 사실을 배운다.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는 마음과 행동을 영어로 컴패션(compassion) 이라 하고, 셈족어로는 라흐민(rahmin)’이라 한다. 라흐민은 어원적으로 어머니의 자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헴(rehem)’에서 유래했다. 어머니와 아이의 원초적인 관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원형은 라흐만이다. 인간내면에 새겨진 이기적인 본능과 이타적인 모성애의 갈등은 고전이나 경전의 최고 주제다. 성서에서는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을 통해 그 모습이 드러난다.

 

인류 비극의 원형, 가인과 아벨

(3: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3:23-3:24]

 

아담과 이브는 이제 에덴동산에서 나왔다. 아니 나올 수밖에 없었다. 동산 안에서 그들은 할 일이 없었기에 신을 부를 일도 없었다. 에덴동산의 밖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아담은 흙을 경작하는 농부가 됐다. 이제 인간은 자연이 주는 열매를 따먹는 수동적인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신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며, 시간의 지배를 받는 존재가 되어 언젠가는 죽게 된다.

첫째 아들인 가인은 아버지 아담의 가계를 이어 농부가 되었고, 둘째 아들인 아벨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다. 그는 양을 치는 유목민이 됐다. 가인과 아벨의 갈등은 둘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갈등은 신에게 바치는 제사에서 시작된다. 신은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고 아벨의 제물만 받았다. 그러나 우주를 창조한 신이 곡식을 바 쳤다는 이유만으로 가인을 미워했을 리 없다. 또한 그가

가인과 아벨 이야기의 핵심은 이들의 이름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브는 가인을 출산한 후 주의 도우심으로, 내가 남자 아 이들 얻었다고 말하며 그의 이름을 획득한 자라는 의미의 가인으로 지었다. 가인의 직업인 농부는 인간이 문명사회로 나가는 젓 단계를 의미한다. 인간은 기원전 1만 년에 고대 근동 지방에서 처음으로 사냥채집 경제에서 농업 정착생활로 전환했다.

학자들은 이 사건을 신석기 혁명이라한다. 인간들은 농업 정착 생활을 통해 마을과 도시를 만들고, 수로 개발과 음식 저장 기술을 통해 잉여 농산물을 배출한다. 비로소 인간들은 정교한 노동 분화와 장거리 무역, 계급사회, 중앙집권적 정치 형태를 이루어 문명사회로 진보한다.

아벨의 이름은 누가 지었는지 알 길이 없다. 이를 통해서도 가인과 아벨 이야기의 중심은 가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아벨의 이름은 성서 히브리어에서 두 가지로 등장한다. 아벨의 이름의 의미는 헤벨(Hebel)’이며 그 의미는 /수증기/헛됨이다. 누가 자식의 이름을 헛됨, 금방 사라지는 존재라는 뜻으로 짓겠는가? ‘헤벨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드러난 구절은 (전도서) 12절이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우리가 누군가에서 선물을 할 때, 수용자의 기분까지 강요할 수는 없다. 하시안 가인은 자신의 제물을 기쁘게 받지 않는 신을 이해할 수 없어 분노한다. 마치 부모처럼 이러한 가인의 마음을 읽은 신은 가인에게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얼굴색이 변하는 까닭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 그리고 이어서 네가 올바른 일을 하였다면, 어찌하여 얼굴을 펴지 못하느냐? 그러나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하니,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 문장에 드디어 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죄는 영혼의 문 앞에 웅크려 있는 괴물과 같다.

죄를 의미하는 히브리어는 하타(hata)’인데, 그 본래의 의미는 주어진 길에서 벗어나다이다. 여기서 길이란 십계명과 같이 언약백성이 신에게 부여받은 마땅히 가야 하는 길을 의미한다. 고대 셈족 인들은 신이 개인에게 맡긴 그 길을 알지도 못하고, 추구하지도 않는 것을 죄라했다.

신은 가인의 불만족이 그의 삶을 파괴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스스로 죄를 다스리지 않으면 그 죄가 스스로를 지배할 것이라고 말해주지만 가인은 신의 충고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가인의 욕망인 죄는 그를 사로잡아 아벨을 살해하려는 결심을 하게 한다. 가인은 아벨을 자신의 삶의 터전인 들로 데리고 나가 살해한다.

 

나는 내 형제를 지키는 자입니다.

창세기> 4장에서, 동생 아벨을 살해하고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는 가인에게 신은 네 동생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라고 묻는다. 에덴의 동쪽에 거주하기 시작한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내 존재의 위상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 그것이 동생이든 친구든 이웃이든 그들이 어디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런데 신의 질문에 대해 가인은 퉁명스럽게 저는 모릅니다. 내가 내 동생을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대답한다.

 

오바마의 연설의 일부이다.

만일 시카고 남부에 글을 읽지 못하는 소년이 있다면, 그 아이가 제 아이가 아닐지라도 그 사실은 제게 중요합니다. 만밀 어딘가에 약값을 지불하지 못하는 노인이 의료비와 월세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그녀가 제 할머니가 아닐지라도 제 삶마저 가난하게 됩니다. 만일 어떤 아랍계 미국인이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체포당했다면, 그것은 제 시민권에 대한 침해입니다.

 

군중들은 이 연설에 숨을 죽였다. 그들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자비와 희망의 불씨에 다시 불이 붙은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오바마는 플리트센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훔쳤다. 그 순간 그는 이러한 말을 건넨다.

저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저는 제 형제를 지키는 자입니다. 저는 제 자매를 지키는 자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나라를 작동하게 합니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개인적인 꿈을 추구하지만 미국이라는 하나의 가족으로 모이게 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럿으로 구성된 하나(E. pluribus unum)’입니다.

그 후 오바마는 일리노이 주로 돌아가 재직 중이던 공화당 상원 의원 알란 케이스를 물리치고 민주당 상원의원이 됐다. 뿐만 아니라 4년 뒤인 2008년에 미국 대통령이 되었고, 2012년 재선에 성공하였다.

오바마가 말한 저는 제 형제를 지키는 자입니다라는 구절은 창세기> 49절과 깊은 연관이 있다. 신이 아벨을 살인하고 숨어 있는 가인에게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가인은 질문으로 대답한다. “내가 제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까?" 오바마의 연설은 가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팀웰익 주사위는 이제 우리 각자에게 던져졌다. 당신은 나만 흑 쓴 내 형제만 지키는 자인가. 아니면 우리 사회 안에서 불행을 겪는 모든 이들을 지키는 자인가. 신은 우리 모두에게 너의 아우아벨이 어디에 있느냐?"라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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