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 홈 >
  • 담임목사 코너 >
  • 담임목사
담임목사
1. 네가 어디 있느냐(창 3장 9절) 이상욱 2017-07-18
  • 추천 0
  • 댓글 0
  • 조회 270

http://imokmin.net/bbs/bbsView/48/5296782

1. 네가 어디 있느냐(<3:9>)

 

서론

'아담'에게 던지신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질문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이 숨은 곳을 몰라서가 아니고 아담 자신이 처한 위치가 어디이며 범죄함으로 자신에게 미친 죄의 심각성을 깨닫게 하시려는 부르심인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자기의 사명을 망각하고 배 밑창에 숨어있는 '요나'를 부르심과(<1:4>~10) 향락 때문에 범죄한 '다윗'을 찾으시는 부르심(<삼하 12:1>~3)이며, 지금도 자신의 양들을 부르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입니다(<22:9; ><7:37>). 그런데 이러한 부름에 대한 아담의 대답은 (<3:10>)에서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고 했습니다.

그는 벗었기 때문에 두렵다고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려 했습니다. 즉 자신의 두려움을 벗었다는 잘못된 이유로 돌림으로써 솔직하고 고백과 회개가 아닌 핑계와 변명으로 일관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아담의 행동에 카일(keil)'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수치감의 표현'이라 미화시켰고 델리취(delitsch)'무의식적인 자아 변명'이라고 하여 이러한 의미를 약화시켰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해석은 말 그대로 자아 변명적 해석일 뿐 정당한 해석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범죄한 인간의 사악한 본성이 후에 계속되는 변명에서 잘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죄악의 인생들은 자신을 하나님으로부터 피할 수 있으리라 착각하고 범죄합니다. 그러나 인생은 어느 누구도 빛 되신 하나님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139:7; ><23:24>).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행하는 죄악들이 은폐될 수 있다는 착각에서 속히 벗어나야 합니다. 죄의 결과는 아주 무서운 것입니다. 아담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교제가 끊어져 하나님을 상실하게 되고 총명이 어두워지고 말았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신 것입니다. 오늘 여호와께서 아담을 찾으신 뜻을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범죄한 인간을 깨우치는 음성이고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를 지었던 것입니다. 사단의 말을 들은 것이 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욕의 지배를 받은 것이 죄가 되었습니다. 먹음직하고 탐스러운 것 금단의 열매를 먹은 것입니다. 이생의 사랑, 명예욕,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욕망 때문에 범죄한 인간이 되고 만 것입니다.

죄는 양심을 죽이는 독약입니다. 마비된 양심은 죄인의 위험한 처지를 전혀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죄는 사람의 영혼을 죽여 죽은 자가 위험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이 전혀 위험을 모르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인은 멸망으로 달려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내린 첫 역사는 먼저 아담을 깨우쳐 주는 사역이었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것은 '지금 네 자신을 보라 지금 너는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자로서 하나님의 임재를 두려워하는 비참한 자 인 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성도들 중에도 재산이 파멸 상태에 있으면 발을 동동 구르고 야단들입니다. 한데 영혼이 파멸로 내려가는 데는 깨닫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신 하나님의 음성은 죄를 깨닫고 또 죄의 결과를 생각해 보고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께 자백하여 용서를 구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범하였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죄를 깨닫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시는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2. 고통의 인생을 찾으시려는 음성이고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그들 나름대로의 고통이 있었는데(<3:7>)

1) 눈이 밝아짐으로 고통을 느끼게 되었고 자기들이 벌거벗은 것을 느끼는 고통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너무 이 육신의 눈이 밝아서 걱정입니다. 교회 오면 꾸벅꾸벅 졸지만 상점에서는 자리의 눈이 너무 밝아서 자신의 유익만을 취하는 자가 있습니다.

원하옵기는 성도들이여! 재리의 눈이 어두워져도 영의 눈이 밝아지기를 원하며 하나님의 영광과 하늘나라의 무궁한 영화의 소망을 밝히 볼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2) 벌거벗은 것을 부끄러워하고 고통이었고 전에는 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않더니 범죄 후에 눈이 밝아져 자신을 보니 벌거벗었음을 알게 되어 부끄러운 고통에 빠진 것입니다. 성도들이여! 우리는 육의 눈이 밝아질 것이 아니라 영의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내 영의 모습을 깨닫고 예복을 입어 하나님 앞에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3) 형벌의 두려움의 고통이었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실 때 공의의 하나님께서 형벌을 줄까봐 무서워 하나님의 낯을 피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옥에 갈 영혼을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시사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라며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죄 지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비의 음성도 두려운 음성으로 들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사 둔한 영혼을 깨우쳐 주시고 죄를 깨닫게 하여 주시고 돌이키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지옥 문턱까지 간 죄인에게도 찾아와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잊으나 하나님은 죄인이라도 잊지 않으십니다.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피하고 숨고 심지어 하나님의 존재까지 부인하나 하나님은 이런 죄인이라도 찾으시고 오셔서 부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범죄한 인간에게도 주 안에서는 소망이 있습니다(<1:18>)"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고 했고, (<11: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죄인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 음성을 듣고 모든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새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3. 사망의 인생을 찾으시는 음성이고

아담과 하와가 수풀 속에 숨어 있으면서 죽을 것밖에 생각되는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천지 창조 이래 죄로 인하여 사망의 고통이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하여 죽게 된 인생들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찾아와 그를 다시 살리시려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나오는 자는 죽을 수밖에 없는 삶에서 영원한 삶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를 내버려 두시지 않으시고 새 구원의 길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십자가 사건이며 부활 사건입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다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완전히 떠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는 마음뿐 아니라 몸마저 하나님을 만나기가 싫어서, 아니 두려워서 자진하여 숨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제를 단절하고 있습니다. 그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아차 실수로 잘못되었다고 느꼈다면 즉시 회개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먼저 하나님을 찾았어야 했던 것입니다. 에덴동산을 올라 뛰고 내리 뛰면서 '나의 하나님이여 이 못난 것은 그만 범죄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어찌하여야 살 수 있겠나이까?'라고 하나님을 찾아야 마땅할 터인데 반대로 그는 어리석게도 나뭇잎 사이에 숨었습니다. 그러나 인자하신 하나님은 숨어버린 아담을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부르시며 찾으시는 주객이 전도된 셈입니다. 어찌하던 우리도 마음에 소재가 하나님께 향하고 있는가. 늘 살피며 살 것입니다.

 

4. 아담의 육체 소재가 아니고 마음의 소재를 부르심이고

아담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나무 열매를 아내 하와가 자신이 먼저 따먹고 남편인 자기에게 주는 것을 아무 거절하는 마음 없이 달게 받아 먹었습니다. 그랬더니 자신들의 눈이 밝아져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마침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낯을 피하여 동산나무 사이에 숨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이 나무 그늘에 숨어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신 것은 아닌 것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부르심은 그 마음의 소재를 부르심이니 "하나님의 불순종하고 거역하여 금지하신 선악과를 따먹은 네 심보가 어찌되었는가?"라고 하시는 뜻입니다.

 

5. 책임을 물으시려는 음성이고

(<3:11>)"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의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고 하였고, (<3:13>)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고 물었습니다. 배약과 배신과 배은에 대한 죄를 다시 각성시키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각성이 아니라 자기들이 행한 일에 합리화하면서 핑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아담의 핑계

아담을 찾아오신 하나님은 먼저 엄히 그의 죄를 책망하셨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아담의 답변은 모든 책임을 하와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보호하고 아껴 주어야 할 아내에게 모든 책임을 미루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러한 책임 전가는 하나님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즉 아담은 하와를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라고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책임을 하나님께로 전가한 것입니다. 이러한 식의 책임 회피 혹은 책임 전가는 오늘날 신앙인들 가운데 발견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고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에 착안하여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로 돌리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2) 하와의 핑계

아담이 범죄에 대한 책임을 하와와 하나님께 돌린 데 반해 하와는 뱀에게 돌렸습니다. 이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합니다. 하와의 범죄는 뱀의 꾐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온전한 인격자로서 책임 있는 답변은 못 됩니다.

왜냐하면 그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따 먹지 말 것을 엄히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뱀의 꾐에 넘어갔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다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만 충실했다면 그를 유혹하려던 뱀은 무안만 당하고 돌아서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무시한 데서 비롯된 범죄의 책임을 뱀에게 돌리려는 하와의 시도는 오늘날 성도들 가운데서도 종종 재현됩니다.

성도들이여! 주님의 말씀을 바로 지키며 살 것이고 혹은 잘못되어서 책망이 들리거든 곤 회개할 것이로되 변명하려는 생각을 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변명을 듣자고 책망을 하시는 게 아니고 회개를 원하시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6. 심판하시려는 음성이고

1) 뱀에게 저주하심

(<3:14>)"종신토록 흙을 먹어야 한다."고 저주하심으로, 뱀이 배로 기어다닐 것과 흙을 먹고 사는 저주를 선언하시었습니다. '배로 기어 다닌다'는 것은 천한 존재로 전락했다는 뜻이며 흙을 먹고 산다는 것 또한 수치스러운 존재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 하나님과 같이 될 것(<3:5>)이라고 교만을 충동한 죄가 배로 기어 다니는 천한 존재로 부응되었고 하와로 하여금 금단의 열매를 먹게 한 죄가 흙을 먹고 사는 수치스러운 존재로 부응된 것입니다. 이는 파충류로서의 뱀에게 내려진 존재적 저주입니다.

 

2) 여인 하와에게 내려진 저주

잉태와 해산, 남편의 다스림을 받을 저주입니다. 남편을 사모해야 하는 여인에게 있어서 사라의 절대성을 뜻합니다. 이것은 선악과를 남편에게 먹게 함으로써 잘못 행사된 여인이 사랑에 대한 하나님의 부응으로서 여인으로 하여금 사랑에 매인 존재가 되게 한 것입니다.

'남편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라는 것은 남편을 유혹하여 범죄케 한 데 대한 하나님의 부응으로서 이는 여자로 하여금 대등한 관계로부터 종속적 관계로 전락하게 함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존속적 관계라 함은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아니라 성의 우위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남편과 아내를 그리스도와 교회로 비유하고 머리와 몸으로 비유한 데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5:22>~23). 아내는 남편을 그리스도와 같이 경외하고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 하는 관계(<5:33>), 바로 그러한 관계가 남

편과 아내 남자와 여자의 관계입니다.

 

3) 아담에게 내린 저주

선악과를 따먹은 범죄에 대한 가장 무거운 저주가 내려졌으니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했습니다. 또한 아담의 범죄는 땅도 저주를 받았으니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되었으며 노동의 수고가 있어야 식물로의 채소가 생산되도록 했습니다. 범죄 이전의 땅은 독초를 생산하지 않았고 좋은 초목만을 나게 했습니다. 인간이 노동하지 않아도 땅은 좋은 열매를 생산해 냄으로써(<1:11; 2:9>) 인간의 식물을 풍성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땅은 인간에게 그런 은혜를 베풀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 하신 결과를 먹은 데 대한 하나님의 부응인 것입니다.

성도들이여! 이제 우리는 계속된 축복을 받기 위해 주의 말씀에 순종할 것이지 말씀을 거부하여 지금보다도 더 못한 지경에 이르지 않게 합시다.

 

7. 구원의 길을 주시려는 음성이고

(<3: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범죄한 인류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로 보내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신 말씀을 깊이 의미해 보면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음성인 것입니다.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눈은 항상 멀리 앞산을 바라보며 그 마음에는 '내 아들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부르짖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죄인을 내버려 두시지 않고 찾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이 지금도 우리를 찾으시며 구원하시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하시되 은이나 금으로 하시지 않으시고 오직 흠도 없고 티도 없는 어린 양의 피로 구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순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고 여호와를 만나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새로운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결론

(<13:15>)"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이여! 아담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도 그 음성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저주받았으나 우리는 바로 듣고 바로 깨달아 축복을 받읍시다.

 

 

 

 ​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2. 너의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 이상욱 2017.07.18 0 303